이 당시는 배타적 경제수역권이 영토에서 3해리인지라  아이슬란드도 어쩔도리가 없었음 

 

 

아이슬란드는 자국 어장 보호를 위해 점차적으로 영해권을 넓히게 되는데  처음엔 4해리로 찌끔 넓히다가  1958년에는 12해리로 넓히면서 

자국 영해에 어선들이 못 돌아오게 막았다   

네델란드등 다른나라는 아이슬란드가 먹고 살려고 발악하는거 보고  "응, 물러감" 하고 나갔다.

하지만, 오랜기간동안 산업의 중추적 역활을 한 대구잡이를  영국은 포기할수가 없었제...  

결국 자국 어선 보호라면서 함대를 파견하고  대구조업은 함대보호하에 유지함..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영국 사람들  해군력 엄청 쎔... 아이슬란드 애들은  울먹거리면서  국제재판소에 쪼르르 달려가서 울고불고 난리쳤고 다른나라에서 영국 애들한테 욕질하는 분위기가 형성.... 결국 영국은 어선단을 물렸다...  이게 1차 대구전쟁임.... 1차 라는 말은 2차도 있단 말이제... ㅇㅇ   14년 뒤인 1972년에

 

아이슬란드는  경제수역권을 50해리로 확장을 주장했다  당연히 영국 어선이랑 충돌했고.. 아이슬란드 순시정이 영국 어선이 그물 쳐 놓은거 보이면 다 가위로 짤라버림.

 

해군력이 상대가 안되니까  가위로 그물 자르고 ㅌㅌ 하는거임... 학창시절에 하는 고무줄 끊고 튀기랑 비슷하다   영국 입장에서도 정색하고 추격하면 전쟁이 되니까  참을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당시가 세계가 냉전 상황인지라 같은 자유진영끼리 싸운다고 하면 미국이 가만히 안 있을 거거든...

 

하지만 전면전만 없었을 뿐이지 양국간의 국교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아예 어선들끼리 서로 해상에서 치고 밖고  서로 그물 짜르고 난리도 아니었음 이게 2차 대구전쟁..

 

 

 

( 간당!!  씹쇼키들앙!!!!     어선을 개조한 아이슬란드 순시함이 영국 구축함을 꼴아 박고 있다  이건 용기인가  만용인가)

 

 

 

3년뒤엔 75년에는  아이슬란드가 아예 약을 빨고  200해리 내에서의 경제적 주권 인정하라고 발광을 했는데 정말 빡친  영국은 군함을 파견 군함끼리 포격을 하는 전쟁 일보직전 상황까지 갔다  (3차 대구전쟁) 

아이러니한건 더 후달리는 아이슬란드 쪽이 먼저 포격을 했다는 것... 쥐도 궁지에 몰리면 빡쳐서 고양이를 문다고 했냐??. 

 이 당시에 아이슬란드에는 나토 공군기지가 있었고  러시아 공산권을 견제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가  약을 빨아도 단단히 빨았는지 "  NATO고 나발이고 우리 어장 보장 안하면  공군기지 다 밀어버릴거야!  ㅠㅠ!"  하며 발광하자  

미국이 빡쳐서 영국한테 아이슬란드 괴롭히냐?  라면서 양보를 종용한다 

이 사건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권에 대한 기준이 국제적으로 논의 되었고  이후  아이슬란드가 주장한 200해리가 EEZ의 기준이 되었음..

 

 

 

 


 

 

 

 

정말 머리 아픈  세계사 시간은 이제 끝....   이제 먹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자...  아까도 말했듯이 대구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많이 먹지

 

하지만 한국에서  대구요리라고 하면 제일  첫 손에 꼽는게  대구탕이다...   겨울철 생선탕으로 대구탕을 1빠로 뽑는 사람이 적지 않음...

 

특히  수컷의 곤 ( 본래는 고니라고 알집을 가르키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대구의 이리 (정소)를 가르키는 말로 쓰더라) 이나

 

암컷의 알 넣고 끓인건 엄청 시원함  츄베릅.......

 


 

 


 

 

 

또한 대가리가 워낙 큰 생선이다 보니 아예 대가리만 따로 요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구 뽈찜이 바로 그거다

 


 


 

이 외에도 대구 의 창자나 알로 만든 젓갈도 있고  경남지방의 특식으로는 대구  알만 놔두고 내장을 빼고 소금 간장을 채워 말린 약대구라는 것도 있다

  

정말  대구철 다 지나가는 시점에 뒤늦게 올려서 미안노.. 근데 시장가니까 아직까지는 그래도 늦지 않았더라.. 여튼 대구는 요까이....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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