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윤의

알고 가면 살기 편한 캐나다





부딪치며 배우기

위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10년 후의 우리들의 미래(체험담)


  저는 박  수영입니다. 저희는 1997년 5월에  토론토로 이민을 왔습니다.
남편은 10년 경력의 엔지니어로서 독립 이민이 가능했습니다. 남편과의 사
이에 10살 된 딸 아이  하나를 두고 있으며 전업 주부입니다. 저희가 이민
을 생각한 것은 2년 정도였지만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한 5개월 정도 됩니
다. 당시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도 안정되고 신도시에 중
형 아파트도 장만하고 별 걱정  없는 생활이었지만 10년 후의 저희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스러웠습니다. 너무나 안정된 저희 생활이 문제였습니다. 안
정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발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희
는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왜
냐하면 대개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전에서 오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과감하
게 실행할 용기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민을 신청하고 거의 1년만
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 신청을 하기까지가 고민스러웠지 일
단 신청을 한 다음에는 더  이상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
습니다.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이민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될  수 있는 대로 정보를  많이 수집하려고 했습니다.
현지 답사도  저희 식구 모두가 왔었습니다.  이민의 주제는 남편이었지만
저도 딸 아이도 어차피 이곳 생활에 적응 할 수가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요. 물론 수박 겉ㅎ기 식이었지만  이민 생활을 보고 간 것이 막연히 이민
생활에 대해 환상을 갖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민 생활에 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점에서 이주  공사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에이전트는 그런 면에서 캐나다의  실정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고 한국식의 성공(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든 지, 아이를 명
문 학교에 입학 시켜야겠다든 지)에 가치를 둔다면 이민 생활이 힘들어 질
것임을 충고해 주었습니다. 어쨌든 이민 준비는 순조롭게 되어서 인터넷으
로 이곳 미시사가에 집도 미리  구해 놓고 출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무엇보다 감사하는 일은 남편이 오자마자 바로 다음날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한국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취
직을 하는 것은 캐나다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집을  얻을 때나 은행에서 융자를 얻거나 할
때 따로 보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이민자 같이 신용이 없는 사람
에게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 외에도 소속감 같은 것이 이민 생활
에 많이 위안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편은 이곳의 직장 생활에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한국에서보다 적지만 시간이 여유롭고 일이 한국에
서처럼 스트레스 쌓이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민 오기 전에  우리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용모도 단정해
서 선생님들도 이뻐하시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었
습니다. 이민 와서 처음 한달  동안은 매일 집에 와서 학교 이야기를 하다
가 울어 버리는 것이었어요. 친구들이  안 놀아 준다는 것이죠. 이 아이가
한국에서처럼 자기가 애써 친구를 만들려고 안 해도 아이들이 놀아 주리라
생각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루는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죠.
  "이곳은 한국에서처럼 네   얼굴 예쁜 것과  공부 잘하는 것을 아이들이
부러워하고 너랑 놀고 싶어서 줄을 서는 곳이 아니다. 친구를 가지고 싶으
면 네가 먼저 누군가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해. 용기를 갖고 먼저 놀
자고 해봐."
  결국 한달 만에  친구도 생기고 이제는 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
을 하든지 한국에서 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이
들이 학교에서 그렇게 부딪쳐서 배우니 결국 아이들이 제일 먼저 적응한다
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극적이고 부딪칠 일
들이 적은 주부들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릴 것같지만 꼭 그렇
지만도 않습니다. 제  경우는 남편이 바로 출근을  해 버렸기 때문에 제가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아이학교 입학부터 아파트 계약, 전화 신
청, 온갖 쇼핑까지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해결하려니 답답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들이 자극이 되어 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어서 지
금은 오히려 남편보다 나은  영어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어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이 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은 별다를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것은 아무 문제도 없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가끔 어떤 문제로 이곳의 일  처리 방식을 저희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힘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 우리가 남의  나라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정든 가족들 곁을 떠나 낯선
이곳으로 온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지금 이야기 할 수 는 없습
니다. 지금은 단지 긴 인생에서 커다란 도전을 한번 했다는 것이 저희에게
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최
선을 다할 뿐입니다. 항상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박수영, 박만식 씨




    다른 문화권에 대한 두려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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