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가면 살기 편한 캐나다


    지은이:린다 윤
    출판사:깊은 사랑
 
    들어가는 이야기


    체험담/피어슨 공항에서 보낸 하룻밤


  어떤 부류의 사람이 이민와서  성공한 케이스인가? 이 같은 물음엔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결코 나는 성공했다고 사방팔방 떠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하지만 부족한 이  글이 이민을 결정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1988년 봄부터 나는 자주 이민병으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일이 자꾸 꼬
이고 모든 게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면 도대체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이민이나 가는 게 상책이라고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민, 이
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민병을 부른 건 그놈의 영어에 대한 한이었을 것이다. 외국인과 자주,
아니 매일  접하는 업무를 1986년에 시작하고부터 '영어'는 나를 끔찍히도
괴롭혔다. 6시에 일어나서 학원에 가 공부하는 등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
지만. 영어 회화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다. 상사가 독일 사람인데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힘들었다.
  '나만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두 명만 제외하고는 다들 더듬는데 뭐.'
  '나만큼 실적 많이 올린 사람 나와 보라고 그래. 또 간부로 일 잘한다고
인정도 받고 있잖아.  영어 좀 못한다 문제될게  뭐야?' 하며 위안을 삼고
나름대로 자긍심도 가져 보았다.  하지만 뉴욕대학 나온 부하 직원이 멋드
러지게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 사람들을  접대하는 모습을 볼 때는 속이 쓰
렸다.
  '내 자식들은 꼭 유학 보내서  영어,불어 등 한 4개 국어 정도는 능숙하
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들겠어.' 가혹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느 날 한강 모래사장에서 시운전 중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트럭이 넘어
졌다. 엔진이 깨지고 차창이 부서지는  등 차는 엉망이 되었다. 수리를 해
도 중고차 가격밖에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운송 사업을 하시던
'미스터 조'라는 사람이 그 트럭을 구입해 주었다. 내게 이민병을 심어 준
그분과 첫대면인 셈이다. 한 달  후쯤 조씨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부
천 현장 근처 일식집에서 만났다.
"지금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답사를 갔다 왔는데, 캐나
다 인상이 하도 좋아 아주  이민을 결정해 버렸죠. 걱정은 좀 되지만 무척
설레요." 조씨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캐나다를 갔다 왔다고요? 그렇게 좋습니까?"
"예에, 한번 가보면 정말 살고 싶어지실 겝니다."
조씨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에게 조씨 이야기를 했다.
"우리 말야, 자식들 나중에 유학보낼 생각 말고, 아예 이민가는게 어때?"
난 정말 이민을 가고 싶어졌고,  아내도 선뜻 응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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