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vs 종이책


최근 전자책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이책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런 논의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다. 아니 소모적이라는 생각이다. 독서라는 행위가 꼭 '책'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물건으로만 해야 된다는 법은 없다. 독서의 본질적인 목적은 '정보의 취득'에 있지 '정보 취득의 도구'에 있지 않다. 정보 취득의 매개체는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즐기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만 하면 그게 바로 '독서'다. <햄릿>을 종이책으로 읽든 전자책으로 읽든 그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세익스피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아마도 전자책이라는 물건보다는 한국의 독자들이 자신의 희곡을 읽는 사실 자체를 더 놀라워하지 않을까?

전자책과 종이책을 두고 그 우월함을 논쟁하는 일은 마치 남자와 여자를 두고 그 우월함을 다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전자책과 종이책은 각자의 특성이 있고, 장단점이 있고, 각자 더 요긴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다르다. 따라서 독자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점을 잘 살펴서 필요한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된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흑백논리 즉 이분법으로 갈라 놓고 자기 자신을 한 곳에 가둔다면 그 만큼 자신의 세계를 축소시키는 겪이다. 종이책을 사랑해 왔다고 해서 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가? 종이책과 전자책은 공구함에 들어 있는 망치와 드라이버다. 못을 박을 때는 망치를, 나사못을 돌려서 뺄 때는 드라이브를 사용해야 한다. 드라이브가 예뻐 보여서, 망치가 든든해 보인다고 해서 어느 한쪽을 버리면 그만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경우를 만난다. 각자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잘 살펴서 각자의 용도를 잘 구분해서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독서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행복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 결국 종이책은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품에, 전자책은 전자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면 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주의할 일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앞서나가면 곤란하다. 가령 매사추세츠주의 명문 사립학교인 쿠싱아카데미는 '책이 없는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종이로 된 책 대신 고성능 컴퓨터와 각종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모니터가 도서관을 채우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종이로 된 책을 모조리 없앤 쿠싱아카데미의 교장의 결정은 잘못되었다. 종이책은 전자책으로 대체되지 못하는 장점을 보유한다. 결국 종이로 된 책과 전자책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지 둘 중의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황야의 결투를 해야 하는 적이 아니다.

<전자책의 장점>
여행하기 편하다. 다시 말해서 휴대성이 좋다는 이야기인데 전자책의 큰 장점이다. 요즘처럼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편안하게 독서를 할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여행이 독서를 즐길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인데 여행을 하다보면 최대의 과제가 짐을 줄이는 일이다. 이럴 때 전자책은 훌륭한 해결책이다. 가벼운 전자책에 마음껏 여러 권의 책을 넣기 때문이다. 가벼우면서 많은 책을 보관하는 전자책의 위용은 현대인에게 매력적인 자랑거리가 된다.

가격이 저렴하고 배송이 빠르다. 일반적으로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반 가격 이하다. 여러 번 읽을 책이 아니라면 전자책이 유리하다. 다시 읽지 않을 종이책을 버리는 일조차도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책 구매에 있어서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배송속도를 중요한 가치척도로 삼는데 전자책은 배송추적을 해가면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결재와 동시에 읽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서 읽기 편하다. 전자책 자체에 조명기능이 있어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읽기에 매우 편리하다. 잠이 쏟아지는데 일어나서 방의 조명을 끄는 일은 의외로 잠을 많이 달아나게 한다. 그러나 시력에 나쁜 영향을 줄 위험은 조심해야 한다.

<종이책의 장점>
깊이 있는 정보가 담겨 있는 책을 읽기에 유리하다. 여러 번 읽고 밑줄과 메모를 해야 하는 책은 그래도 종이책이 더 편리하다. 대학 전공책을 지하철에서 전자책으로 부담 없이 읽을 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은 흔치 않다. 교과서는 확실히 종이책이 더 유리한데 학습의 속도와 정확성에서 더 우월하다는 실험 결과가 증명한다.

전원과 추가 기기가 필요 없다. 한 두 권 정도라면 오히려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휴대성이 더 좋다. 전원이 필요 없다는 점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무인도에서 필요한 물건이 노트북 컴퓨터일까? 종이로 된 책이나 수첩일까?
굳이 긴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복잡한 작업이 아니라면 대개 전원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이 더 편리하다.

소유욕과 지적인 허영심을 만족시켜준다. 당신의 서재에 3천권의 책이 꼽혀 있다면 그 책들을 바라볼 때마다 많은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만족감으로 흐뭇하다. 그리고 서재를 방문한 사람들도 당신의 소장목록을 보고 감탄하면서 당신을 존경한다. 그러나 전자책 단말기에 저장된 3천권의 책을 자랑하기도 어렵고 감탄하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드물다.

책은 외관상 아름답고 오감을 즐겁게 해준다. 책만큼 좋은 인테리어 소품도 찾기 힘들다. 또 새 책 냄새와 각기 다른 책의 모양의 디자인 그리고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은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을 준다.
종이책은 다용도로 사용가능하다. 책은 읽기용뿐만 아니라 배고플 때는 냄비받침대로, 졸릴 때는 베개로, 방을 꾸밀 때 벽지로 사용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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