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시보다 더 까다로운 일제 지원병 모집1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

용맹심을 뽐내고 싶은 혈기 넘치는 조선청년들의

일본군 자원입대를 희망하는 신청서가  
     일본군 사령부에  쇄도

 

 

 

 

1937년 7월 7일  노구교사건으로 

중일전쟁 발발

 일본군의 승리에 ​도취된 영웅심에 불타는

 조선인들, 의용병으로  뽑아 달라고 

조선총독부와  군사령부  일본 정부 관계요로에 청원

 

 

 

 

지원자 시험에  탈락한 청년 자살 

[愛國忠烈의 龜鑑

國家干城이 못됨을 恨嘆하고 自殺한 李昌萬군의 殉死!

 

육군특별지원병전형시험에 불합격이 되자 그를 비관하고 목을 매어 자결한 청년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격의 눈물을 금치못하게 하는 애국열정의 순사(殉死)사건이 있다.

횡성군 서원면 삼리(橫城郡書院面三里) 228번지 이강섭(李康涉)씨의 4남 창만(昌萬)군은 지난 6일 오후 10시쯤

자기집 부근 솔밭 속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였는데 자살원인을 조사하여보면 그는 지원병제도를 실시하게 되자 

제국의 군인이  되어  일사보국의  충성을 다하고자  작년에 지원병에 지망하였으나 

 나이가 모자라..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본년도에 적령(適齡)에 달하게 되니 지원을 하게 되어

  작년 12월 20일에 솔선해서 당지 주재소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145>

 그런 것이 두 번이나 실시한 체격검사에 합격이 되어 그는 크게 기뻐하며 집안 식구와 동모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는 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도전형시험에만 합격이 되면 지원병이 되어 기어히 죽엄으로써 

보국의 정성을 다하겠노라고 날뛰며 최후의 합격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4월 7일에 시행한 전형시험에 불합격이 되었다는 발표가 있자 

그에게는 청천벽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자 이군은 한풀이 죽어서

몇일을 계속하여 밥도 전혀 먹지 아니하고 부모와 동리사람에게 대할 면목이 없다고

 애를 쓰고 있다가 죽기 이틀 전에 동리소학교 6년생 최삼준(崔三俊)

유의형(柳宜衡)군 등을 보고 나는 벼르고 별러오든 지원병도

 이제는 틀렸으니 차라리 죽으려하나 너희들은 부즈런히 공부하여

 지원병이 되어 나라를 위하여싸워달라는 부탁을 한 일이 있었는데

  6일 밤에 형의 집에를 찾아다니며 놀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집안사람의 없는 틈을 타서

 슬그머니 나아가 소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것이라 한다

 

 

 

조선인 지원병 응모자 

 

 

 

지원병 자격 

 

 

  대단하다.

서울대 입시가 이것 보다 치열할까...???

 

 

(1) 사상이 견고하고 품행이 방정하며, 성질이 선량하여 

황국신민이라는 자각에 철저한 자로 할 것주,

 

전과자 특히 민족주의, 공산주의 운동 등에 관련된 자는

 이를 채용하지 않는다.

 

(2) 신체 강건한 자로 할 것.주, 특히 전염병 또는

 유전성 질병의 유무에 대하여 유의해야 한다.

 

(3) 연령은 17세 이상 20세 미만의 남자로 할 것

 

 (4) 수업년한 6년의 초등학교 이상의 학교를 졸업한 자로 할 것

 

 (5) 될 수 있는 한 청년훈련소 또는 청년학교 기타 규율적인

 단체의 훈련을 거친 자일 것

 

(6) 국어 일본어에 능숙한 자일 것.

 

(7) 보통 이상의 생계를 영위하고 또 소박하고

 양순한 가정 출신 자일 것

 

 (8) 호주 및 친권자또는 후견인의 동의를 얻은 자일 것

 

 (9) 부윤, 읍면장이 보증하는 자일 것

 

 

입소하기전에 이력서, 자산소득조사서, 읍면장 증명서,

 체격검사표, 호적초본,

거기에 신상명세서, 장정명부, 장정명부표까지. 

구비서류만 5개에 첨부서류가 3개나 되고

훈련수 수료이후에도 현역병증서까지 제출하고 

훈련소 이후에도 필기시험까지 2개이상 받아야하고

도지사 추천까지 받아야 하는데.-

 

 

 

전형시험 전형과목 좀보소

 

총5과목에 총시험 시간이 총 4시간 50분이여

(맞나. 대충계산)

 

수능이냐 ?

 

이걸 어디를 어떻게 봐서 강제징집이냐?

 

 

(*징집은 1944년부터 ,,,그러나  훈련을 마치고  

 전장에 배치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 대부분 귀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2/08/0200000000AKR

20180208004100073.HTML?input=1195z 

 

 

 

 

 

 

 

조선과 일본이 하나였을 때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

 

 하늘같이 섬겼던 중국을 개처럼 쳐발라 버리고  

 내친김에 아시아를 통합하며 세계최강 미국과 맞짱뜨던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리즈시절이였다 

 

 

 

조선시대였다면 백성들 고혈을 빨아

 술과 기집질이나 하며 

호화방탕질하다 죽을 조선의 3 황태자들 

이은  이강  이우 

 

 저 발의 각도를 보아라... 정확하다..

...

 

 

 

 

 

홍사익 大日本帝國 육군 중장

 

 -1941년 3월 일본제국육군 소장 진급, 보병 제108여단장

  

-1942년 4월~1944년 3월: 일본제국 육군 공주령학교 부교장

 

 -1944년 3월 필리핀 주둔

 

 일본제국군 남방군 총사령부 병참총감.

 

연합군 포로수용소 소장 겸직.

 

 -1944년 10월 대일본제국 육군 중장 진급

 

 

 

탁경현 대위

 

 

 

 김정렬 대위

 

1940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하고

1941년에 항공사관학교 졸업,대위 임관

일본 육군항공대 파일럿으로 참전하다가 

해방후 한국군 1대 공군참모 총장에 임명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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