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셰익스피어 그는 실존 인물이었을까?



     

    위에 사진은 우리가 흔히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9)의 얼굴을 영국의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소장된 초상으로 기억합니다.

     

    이 초상은 별다른 장식이 없는 검은 옷을 입고 귀걸이를 한 대머리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유난히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인 치고는 피부 색깔이 짙은 편입니다. 

     

    물끄러미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표정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어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입니다. 

     

    그러나 이 초상이 ‘작가이자 배우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담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셰익스피어 초상화 원본으로 추정되지만 이 인물이 셰익스피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초상 속 남자의 피부가 유난히 검고 남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귀고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그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 분장한 배우를 그린 그림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은 18세기부터 제기되어 왔으며.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작가에 대해선 크리스토퍼 말로, 엘리자베스 1세, 프란시스 베이컨 등 수많은 인물들이 지목된 적이 있습니다.

     

    가상인물설을 살펴보기 전에 그의 생애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귀족집안의 자제도 아니고, 대학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을 능가하는 심오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 문장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대한 상세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고 말할수 있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생년 월일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포털사이트에는 1564년 4월 26일 태어나 1616년 4월 23일 숨진것으로 표시돼있지만,  실제로1564년 4월 26일은 그가 유아세례를 받은 날일뿐입니다. 이에 근거해 대략 5~60세로 사망나이를 추정하고 있습니다.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기역시 밝혀진 바가 없으며 더욱이, 사생활은 그야말로 신비롭습니다.

     

    그는 1564년 영국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던 상인 아버지 '존' 의 덕택으로 유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고향의 그래머스쿨(대학진학을 위해 가는 중등학교)까지 교육받았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83년에 자신보다 8살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Anne Hathaway)와 어린나이에  결혼했으며, 이듬해에 딸을, 1585년에 쌍둥이를 얻어 세례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약 7년간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뭘 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592년 동시대의 극작가 로버트 그린이 보낸 서한에서 셰익스피어를 언급한 기록이 있어 꽤 잘나가는 극작가 였을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로버트 그린이 보낸 서한은 "학식 낮은 촌뜨기가 벼락출세를 하더니 누구 못지않게 잘할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를 단서로 전문가들은 극작가로서의 활동시기를 1590~1610년까지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이시기동안 그는 극작과 배우 활동으로 제법 큰 돈을 벌어서 고향 스트래트어폰-에이번에 방이 10개쯤 되는 2층 집과 토지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활동 당시 영국을 통치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는 모두 그의 연극을 좋아해서 그의 극단이 왕궁으로 가 연극을 공연한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베로나의 두 신사’를 비롯해 ‘햄릿’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등 모두 38편의 희곡과 백 편이 좀 넘는 소네트(Sonnet; 짧은 시)를 썼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언제 런던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1616년 고향에서 타계해서 인근의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혔습니다. 1616년 스트래트어폰 에이본의 인구조사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신사’의 사망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스트래트어폰-에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그가 배우와 극작가로 활동하며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 많은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런던의 글로브 극장은 1997년 오랜 고증을 거쳐 셰익스피어 활동 당시와 거의 엇비슷한 원형 노천 극장으로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쓴 작품들을 제외하면 위에 쓴 내용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의 친필 원고는 단 하나도 보관되어 있지 않으며, 그의 필적이라고 확인된 것도 그의 유언장에 쓰여진 서명 등 여섯 문장에 불과합니다. 

     

    말년에는 저명인사가 된것으로 전해지며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퇴한 이유 사인 등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며, 확증은 없지만 그의 묘비에 쓰인글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은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글로 알려져있습니다.

     

    한편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38개의 희곡과 154편의 시를 남겼는데, 시의 경우 생전에 발표한 두 편 외에는 모두 사후에 책으로 공개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셰익스피어가 가상인물이라는 근거를 몇가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 엄청난 유명인사지만 그의 삶에대한 종적이 거의 전무합니다.

     

    - 37개의 희곡과 154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 흔한 친필 원고조차도 단 한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셰익스피어는 " 대리석의 왕후의 황금 기념비도 이 힘있는 시보다 오래가지 못한다" 라는 말을 남길정도로 자신의 시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는데 유언에서조차 자신의 작품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시골 출신으로 대학 교육도 못 받은 그의 환경과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그의 작품에는 방대한 지식과 엄청난 어휘가 사용되었고, 더군다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어휘가 풍부한 것이 아니라 당시 왕실이나 귀족들의 생활상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에서는 별달리 읽을만한 서적도 없었으며, 중학교에 해당하는 그래머 스 쿨(grammar school)만 다니고,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부모, 자식, 아내(아내는 악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온 가족이 문맹이였습니다.

     

    이런 근거로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며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그의 진위여부를 밝혀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으며,  영국내의 유명인사 287명이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흑인운동가 말콤 X는 영국의 군주 제임스1세가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했으며, 1984년에 찰튼 오그번 주니어는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었던 건 확실하지만 그가 썼다고 말해지는 작품들은 한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 뒤에서 내용을 더하고 빼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음모론을 담은 책)

     

    그럼 누가 이 완벽한 글들을 썼을까요?

     

    1)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 : 에드워드 드 비어

     

    이 설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서도 다뤄진적이 있을정도로 유명하였으며,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의 얼굴과 셰익스피어 초상화의 얼굴이 비슷하다는데에서 기인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극작가 폴 스트라이츠가 저서 ‘옥스퍼드:엘리자베스 1세의 아들’에서 셰익스피어가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라고 주장했습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스트라이츠가 이 책에서 “평생 독신으로 지내 영국과 결혼했다는 엘리자베스 1세가 사생아를 몇명 낳았으며 1548년 비밀리에 낳은 첫 사생아가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16대 백작 존 드 비어 부부에게 맡겨 에드워드 드 비어로 양육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있었기에 ' 햄릿' 등의 작품에 그의 비극적인 내용을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 프란시스 베이컨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베이컨이 암호를 통해 작가가 자신임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작품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 학자였으며 방대한 지식을 소유했지만 작가로 알려지길 꺼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은 길거리 약장수나 매춘과 비슷한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고 함)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법률과 프랑스 궁정이 자주 언급되는데 프랜시스 베이컨은 프랑스를 방문한 동생 앤서니에게서 프랑스의 자세한 사정이 적혀 있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대법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수상의 친척이었고 프랜시스는 영문학 사상 손꼽히는 시들을 다수 남긴 시인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암호, 논리학 등 다방면에 걸쳐 지식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들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정보들을 가장 잘 다룰수 있을거였으며, 그가 법무장관에 취임하던 해 1611년,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당대에 베이컨이 암호에 익숙했음을 근거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조상에 새겨진 알파벳들을 해독 가능하게 정렬시켜 보면 베이컨의 이름을 이루고 있는 글자들 'FRANCIS BACON'이 모두 담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3) 옥스퍼드 가문의 17대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 ( 첫번째 설과 약간 다름 )

     

    그는 귀족 출신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았으며 높은 지식수준으로 글을 썼지만 시대적인 상황으로 제 3자의 필명을 빌려써야 했다는 설로 필명 (셰익스피어)가 옥스퍼드의 가문 문장 ; 부러진 창을 휘두르는 사자의 모습

     

     

    즉 shake(흔들다) 와 spear(창) 이 합쳐져서 창을 휘두르는 사자의 형상을 필명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햄릿의 경우 이상할 정도로 옥스퍼드 백작의 인생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합니다.

     

    가장 가능성이 많다고여겨지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4) 크리스토퍼 말로

     

    여왕의 스파이로 비밀 첩보 활동을 한 바 있는 말로가 자신이 주장한 무신론이 화근이 되어 체포와 사형을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에,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필명을 바꾸어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신문 기자 캘빈 호프만은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의 피살 문제'라는 책에서, 크리스토퍼 말로가 그의 후원자였던 토마스 월징엄 경의 사주자들의 손에 살해된 것이 아니라, 무신론자로 처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월징엄 경이 말로가 살해당한 것으로 위장한 후 유럽으로 안전하게 도피시켰으며, 후일 말로는 비밀리에 귀국하여 월징엄 경의 집에 은신하며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극작을 발표했다.

     

     

    5. 지식인들 공동집필

     

    그 당시에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대학 지식인들 중 몰래 연극에 참여한 이들이 적지않게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중 몇몇이 사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셰익스피어라는 필명뒤에 숨어서 글을 집필했다는 주장.

     

    당시에는 공동창작이 워낙 빈번한 일이였기에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셰익스피어가 가상인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희곡은 셰익스피어 본인이 썼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몇세기가 지나서도 감동을 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기에 그의 존재 여부가 더 궁금한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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