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위대했던 금융실명제 그리고 정권 스토리 - 2

만약 실명으로 거래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과태료와 추징금을 부과하였습니다.

매년 세금에서 10~60%의 가산세 부과 뿐만 아니라 이자 소득의 96.75%라는 말도 안되는 세율을 부과합니다.

소위 말해 번 돈 다 내뱉으라는 엄포지요.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실명제 시행시 국내 자금들이 해외로 모조리 빠져나가서,

엄청난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려는 며칠간의 증시 폭락으로 끝났습니다.

이는 김영삼 정부도 예상했던 부분이구요.

지하 자금들이 주식 투자 등의 증권 거래로 활기를 띄며 금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실명 전환할 경우 5천만원까지는 출처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여유도 주었거든요.)

그렇게 금융실명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긍정의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영삼 대통령은 어떻게 갑작스러운 발표가 가능했을까요?

 

바로 이경식 경제부총리를 필두로한 비밀결사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준비 시간은 2개월.

집권 1년 차에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의지 또한 담긴 작전이었습니다.

 

이경식 경제부총리는 특별팀을 과천에 꾸려 한달 이상을 그 안을 나가지 않고 이 작전을 수행합니다.

방안, 예상, 각종 스왓 분석 등을 말이죠.

해당 팀은 해외 출장을 명목으로 공항까지 가서 몰래 빠져나와 과천을 가거나,

일본으로 실제 출국한 뒤 몰래 입국하여 과천으로 가거나,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과천으로 가게 되는 그야말로 비밀결사대였습니다.

그 정도의 보안 유지가 있었으니 기습 발표가 가능했지, 

만약 조금이라도 새어나갔으면 발표 전에 무산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김영삼 대통령을 무조건 폄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영상 대통령의 금융실명제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를 줄여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하고 있는 그 모습이 김영삼 대통령이 먼저 보여준 모습입니다.

 

탈세는 어려워지고,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이 되고,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그야 말로 절정이었죠.

대학생들 인기 투표에서도 당대 최고의 스타 최진실, 서태지, 허재, 장동건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 김영삼 대통령이었으니 말이죠.

93년도 대한민국 100대 스타에도 김영삼 대통령이 1위였습니다.

 

 


 

 

김영삼 칼국수, 조선총독부 폭파 등등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습니다.

30대 중반 이상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지만 97년 한국 외환 위기의 시작인 한보 부도 사태를 시작으로,

아들 김현철의 비자금 120억.

연이어 터진 대기업들의 부도 사태로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난을 가져오죠.

인기는 그야말로 곤두박질치고..

93년부터 95년까지 이뤄온 공적은 모두 지워버리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듣습니다.

나라 경제 말아먹은 주범이 돼버리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IMF는 왔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금융실명제는 많이 늦어졌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만 해도 김영삼 대통령의 공적은 인정 받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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