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 대한민국에 쓸모없는 오지랖 - 2


 


내 삶에 대한 책임이 분산되어 있는 만큼 내 삶에 대한 결정권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넘어가 있다고나 할까.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개인들의 삶의 지분이 각자에게 온전히 있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도 어느 정도 나뉘어 있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너의 삶이 온전히 나와 너의 것이 아닌 사회.

이렇게 집단주의는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이라는 집단주의의 기본 모토 + 개개인의 리스크에 대해 완충작용을 한다는 점의 대가로 개인들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게 된다. 그 흔한 오지랖들도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개인의 삶이 취직해!! 결혼해!! 애 낳아!! 등의 외적 압박을 통해 조정, 제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른 건 몰라도 개인들의 ‘행복’에 있어서는 집단주의 문화보다 개인주의 문화가 훨씬 이득인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오지랖

상대방을 위한 배려심은, 
적당했을때만 아름답다.


도를 지나치면 오지랖이 되고.
그때부턴 배려가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사람간의 감정전달이라는것은

주는쪽에서 판단하는것이 아니라, 받는쪽에서 판단한다.
아무리 좋은것을 주더라도 받는사람이 불편하다면 아니함만 못하다.

 


배려심이,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는것을 깨닫는순간 
대인관계는 그만큼 성숙하게된다.

 


다른관점에서 보면 배려심은 매우 이기적이다.

내 마음에 안드니까 사사건건 지적질하는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수도 있고,
상대방의 개인적 상황을 정확히 파악 못했으면서도,


그저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만족할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시정을 명령하는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한 발상인가 ?

지나친 배려는 남을 불편하게 하는 오지랖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오지랖과 꼰대질의 함정 “내가 그랬으니까, 너도 당연히 그럴 거야”

 

그래서 그냥 내가 이렇게 보고 느꼈으니까 너도 그렇게 보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내가 이랬으니까 너도 그럴 거야’라며 나에게는 먹혔던 인생의 방식 등이 상대방에게도 잘 작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너에게도 당연히 잘 작동할) 나의 조언을 왜 따르지 않아?’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해서 성공하세요.”류의 이야기들이 넘치고 때로 “네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만큼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라는 비난까지 보인다.

여기에도 타인의 입장과 삶의 방식들을 자신이 편한 대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만 비추어 해석하고 심하게는 암묵적으로 ‘내 삶의 방식이 모두에게 먹히는 진리’라고 하는 모습들이 깔려있는 듯 하다. 반면 서로의 삶과 조건이 많이 다를 가능성과 ‘그래서 사실 내 삶의 방식이 타인에게는 별로 유용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 흔한 ‘내가 해 봐서 아는데~’류의 조언들 역시 나와 타인의 능력치와 환경들이 매우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면 그건 그냥 나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참고 정도로 사용될 수 있어도 타인의 삶에 대한 완벽 가이드가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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