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10탄


결국, 타이타닉호에서 회수한 리벳을 연구해 모사품을 만들어 당시 타이타닉호에서

일어났을 충돌실험을 하자 해당 힘인 14,000파운드의 압력이 체 가해지기도 전인

10,000파운드의 압력에 모사품이 손상되기 시작했으며 분석결과 모사품보다

당시 타이타닉호에 쓰였던 리벳이 오히려 더 심각한 손상을 받았으며

균열도 더욱 컸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타이타닉호 사고에 대한 진실

1912년 4월 14일 춥고 달빛도 없는 밤을 21.5노트로 항해 중이던 타이타닉호는,

망루에서 어둠과 차가운 바람으로 시야 확보에 곤란을 겪음은 물론

캘리포니안호의 빙산 경고 신호는 조타실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충돌 직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빙산은 타이타닉호와 충돌하면서

14,000파운드의 압력을 동체를 연결하는 리벳에 전달합니다.

 

강재 함유량이 많던 배의 앞부분의 리벳은 그 순간 파손되어 파열된

이음매로 물이 들어와 순식간에 다섯 개 구획이 침수되고 맙니다.

 

이는 부양 한계보다 한 구획이 초과한 상황이었으며 가장 가까이 있던

캘리포니안호에 구조요청을 보내도 해당 무전사 시릴 에반스가

잠들었기 때문에 상황은 절망적으로 흐르기만 할 뿐입니다.

 

결국, 빙산과 충돌한 지 2시간 30분이 흐르고 역사상 최대의

호화 유람선이었던 타이타닉호는 허무하게 가라앉으며

1,5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맙니다.

 

음모론

<당시 타이타닉호와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빙산>

 

이렇게 당시 떠있는 궁전으로 불리던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에서 일어난 처참한 비극으로

미국은 북대서양 빙산 순찰대를 조직하게 되었고, 해양 안전법도 개정돼 모든 선박은

충분한 구명정을 갖추도록 의무화했으며 무선통신 기계가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음모론

<타이타닉호의 선장이자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최고참이었던

에드워드 스미스는 구명정의 승선을 거부하고 끝까지 승객들을 지도한다>

 

 

 

:타이타닉

<배의 설계자인 토마스 앤드류슨느 승객들이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일등실 흡연실에서 조용히 자신이 설계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타이타닉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8명의 연주대는 배가 침몰하기 10분 전까지도

두려움에 찬 선객들을 위해 연주했으며(당시 연주한 곡으로 성가인

'우리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와 '가을'이 유력하게 뽑히고 있다),

연주가 끝난 후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지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최후를 맞이한다>

 

 

타이타닉<

토머스 바일스 사제는 기독교 성직자의 양심으로 구명정의

승선을 거절한 후 다른 사람들의 구명정 승선을 도왔으며,

구명정을 타지 못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였다

그리고 최후까지 갑판 위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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