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3탄


 

 

 


1시 45분 승무원들이 마지막 구명정을 내리게 되었고

갑판에 남아 있던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은 선수가 깊이 침몰하자

선미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게 되지만 빙산과의 충돌 2시간 40분 후

동력이 나가고 조명도 꺼진 타이타닉호와 함께 남겨진 남자들과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승무원들은 구명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고 맙니다.

그리고 새벽 4시 30분경에 도착한 카르파티아호에 의해 생존자들이 구조됩니다.

 

이후 사고 다음 주에 시행된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뉴욕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41,000개의 질문이 오갔지만, 두 청문회 모두 타이타닉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음모론들

 

 

Jesuit(예수회)이 침몰시킨 타이타닉호

 

 

 

 

1830년대 초반 이후 미국은 중앙은행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연방준비은행(FRB)이라는

민간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당시 영국과 유럽 금융계를 장악했던

로스차일드가의 폴 워버그, 록펠러 금융제국의 넬슨 알드리히,

프랭크 밴더립, J.P 모건사의 헨리 데이비슨, 찰스 노튼,

벤자민 스트롱, 이 예수회에 소속된 6명의 남자가 1910년

조지아해 연안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제킬섬에 모이게 됩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폴 워버그, 넬슨 알드리히, 프랭크 밴더립,

J.P 모건사의 헨리 데이비슨, 찰스 노튼, 벤자민 스트롱>

 

그들은 당시 유럽은행을 장악한 데 이어 예수회에 소속된 유대인 자본가들이 민간자본으로 미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해 누구의 간섭도 없이 무한한 자금을 공급받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계획에 당시 최초의 백만장자이자 세계제일의

거부로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트로의 자손인 존 제이콥 아스트로 IV,

역시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 뉴욕의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던 이사도라 스트라우스와 같은 돈과 영향력 모두를 가진

몇몇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상태였습니다.


타이타닉

<왼쪽부터 구겐하임, 아스트로, 스트라우스 부부>

 

이때 화이트 스타라인사를 소유하고 있던 J. P 모건은 타이타닉호에

이들 유대인 거부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출항식에 초대했으며,

(당시 이들이 보유했던 재산의 가치가 지금의 10조를 넘어간다고 합니다)

같이 승선하기로 했던 J. P. 모건과 예수회 소속 자본가들은 갑작스레 승선을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수년간 예수회였던 J. P. 모건을 위해 일함과 함께 예수회를 돕는

세속 동조자이자 성직자는 아니었으나 예수회의 임시 보좌주교였던

에드워드 스미스가 배의 선장을 맡게 됩니다.


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4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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