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6탄

 


안녕하세요 오늘은 타이타닉 침몰에 관련된 정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타이타닉 침몰

<당시 캘리포니안호의 선장이었던 로드>

 


타이타닉호의 건조 전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메인은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올림피호였습니다.

 

올림픽호는 타이타닉호의 자매선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며 타이타닉호를

포함해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3대 호화선으로 불리지만, 1911년 6월 첫 출항

직후의 사고와 9월 순양함 호크와 충돌로 말미암은 손상으로 11월 말까지 운행이

불가능해지는가 하면 1912년 2월 복귀와 동시에 해상에서 장애물과 충돌해

추진기가 떨어져 나가며 8개월 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로 보험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막대한 수리비가 들어가게 생겼으며 설상가상으로 이틀 후에는 승객 1명이

낙하해 행방불명되는 사건으로 화이트 스타라인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립니다.

 

또, 몇 번의 사고로 당시의 조선기술 때문에 내구성이 현격히 떨어지며

완성으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무보험 상태는 물론 배상 책임까지

겪으며 화이트 스타라인의 경영 부진에 일등공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화이트 스타라인의 소유주였던 J. P. 모건은, 똑같다고 할 정도로

비슷한 외관의 두 배를 이용해 고액의 보험금을 받을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타이타닉 침몰

<좌측의 타이타닉호와 우측의 올림피호>


 

그리하여 당시 불침선으로 불리며 3년간의 건조기간이 걸린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출항 직전 올림픽호와 나란히 수리를 받게 되었으며, 이때 도장 부분이 서로 바뀌게 되면서

완성 당시 피로연이 있었던 타이타닉호의 창의 수와 출항했을 때의 창의 수가 다른 것,

그리고 출항 직후부터 기울고 있었던 바꿔치기 된 타이타닉호를 눈치챈 것은 극소수뿐이었습니다.


타이타닉 침몰1

 

<타이타닉호와 올림픽호의 투샷>



 

그리고 1911년 6월, 9월, 1912년 2월 사고를 당했던 당시 올림픽호의 사고책임자였던

선장이자 알코올중독이라는 소문이 있던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항해를 남겨두었던

스미스 선장을 당당히 초호화 여객선의 첫 항해 선장으로 임명합니다.


 

당연히 승선예정이었던 모건은 병을 핑계로 타이타닉호에 승선하지 않았으며,

그의 지인들도 모두 승선 직전 취소로 배에 타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건은 타이타닉호에 승선하는 대신 이집트 여행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음의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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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지금까지 타이타닉 침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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