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세사  카마쿠라(kamakura) 시대  분석3

 

일본의 중세사  카마쿠라(kamakura) 시대  분석2에서 이어짐

맑은기운 2015.09.23. 15:07

답변자님의 일본사를 읽다보니 일본의 문물이나 국력이 한반도의 삼국시대 후기에 신라 백제 고구려와 대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통일신라시대 때도 문화나 국력이 대등했거나 우월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다이지의 대불을 보면 불교도 융성했음을 알 수 있구요. 한국의 사가들은 일본의 문물과 국력이 한반도 를 앞선 것은 임진왜란 시기 전후를 잡고 있던데, 이는 일방적인 편견임이 분명해지는군요. 맞습니까? 답변자님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답변자 2015.09.23. 15:14

저는 헤이안 시대부터 역전됐다고 생각합니다. 국력이라 할 수 있는, 인구에서 통일신라의 거의 2배는 됐거든요. 통일신라의 인구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개 300만명 내외로 추산하는데, 같은 시기 헤이안 시대는 400~700만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8%BF%91%E4%BB%A3%E4%BB%A5%E5%89%8D%E3%81%AE%E6%97%A5%E6%9C%AC%E3%81%AE%E4%BA%BA%E5%8F%A3%E7%B5%B1%E8%A8%88

이후 가마쿠라 시대로 가면 더욱 격차가 벌어집니다. 일단 가마쿠라 시대는 완벽한 화폐경제 시대였거든요. 전문적인 상인, 유통업자, 금융업자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자세한건 다음 포스팅에 써보겠습니다)

 

lkjgqg690932 2015.09.23. 19:22

답변자님 만약 발해와 일본이 합동공격 해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신라가 졌겠지만, 일본이 우려했던 대로 정말 당나라가 신라를 구원해줬을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궁금해서.... 너무 수준 낮고 유치한 질문이라 생각되시면 답변 안 해주셔도 됩니다. ㅠㅠ

답변자 2015.09.23. 19:52

8세기 중엽이면 신라의 국력이 나름 괜찮았을 때였고, 발해는 생각보다 국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신당서의 내용을 보면 발해 전체인구가 50만 명이었습니다.) 일본 역시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조악한 항해술과 선박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로 쳐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죠. 2의 백촌강 꼴이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본 학자들은 신라정토계획을 정치적인 제스처로만 생각하지, 현실성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또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우리 측 기록에만 있는 겁니다.) 삼국사기에서는 8세기 초 일본군이 300척의 병선으로 쳐들어왔는데, 가볍게 제압했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본의 중세사 카마쿠라(kamakura) 시대 분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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