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정경화의 원인
정경 또는 반정경으로서의 제1클레멘스서, 12사도의 교훈집, 바나바의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서 등을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동방에서는 3세기 말 명확하게 제정된 정경의 필요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마르키온 이단(140년경)의 불완전한 정경 역시 당시 널리 읽혀지고 있었다. 마르키온은 영지주의자로서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가운데 10편만을, 그것도 많은 삭제를 한 후 그들의 교리적인 근거로 삼았다. 정경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다른 외경적인 위문서들의 출현으로 정경을 명확히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또한 후일 모든 성문서를 불사르라는 로마의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도 정경의 제정을 독촉했다.
정경화 이전의 초기 신약서들
제1클레멘스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BC 96년)로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이것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정경의 권위가 있다고 인정되었으며, 170년경 고린도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낭독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와 같은 이집트의 기록자들은 이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포함되어 있다.
제2클레멘스 역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포함되었던 서신이다. 이것은 로마의 클레멘스의 것으로 잘못 간주되었으며 널리 읽혀지지 않았다. 이것과 제1클레멘스는 여전히 서방에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2사도의 교훈집(Didach, 12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와 같은 일부 이집트 학자들에 의해서 성경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널리 회람되었다.
바나바의 편지(130년경) 시내 사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집트에서는 권위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히에로니무스(400년경)는 이것을 외경으로 여겼으며, 이것은 점차로 성경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해갔다.
헤르마스의 목자서(140년경) 로마의 주교이자 피우스의 형제인 헤르마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것 역시 시내 사본에 수록되어 있고 무라토리 정경(Muratorain Canon)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성경으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베드로의 묵시록(145년경) 앞에서 열거한 책들보다는 다소 중요성이 떨어지나 동방에서는 매우 귀중하게 여겼고 서방에까지 알려졌던 것이다. 이것은 유세비우스에 의하여 허위문서로 인정되었다.
바울행전(170년경) 널리 회람되었고 일부 사람들에 의해 정경으로 여겨졌으나, 학자들의 연구 결과 외경적인 성격이 드러나 점차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 사도들의 이름으로 이후에도 많은 복음서, 행전, 서신과 묵시록 등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명백한 허위문서로, 교회는 이것들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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