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5탄
안녕하세요 오늘은 타이타닉 침몰에 관련된 정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어쨌든 이후 미국 경제공황의 확산을 저지하는 자금력을 보여주는 J. P. 모건, 석유왕이 되는 록펠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되는 로스차일드가는 계속해서 부흥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독일 잠수함 관련 음모론
침몰 후 첫 구명정이 내려가면서 절망에 빠지게 되는 스미스 선장과 선원들에게 불과
10km 떨어진 곳에서 배의 불빛을 발견해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조명신호와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도 없는 선박은 희망의 불빛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며,
구명정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근처를 지나는 배의 탐조등을 봤다고 주장을 하며
당시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던 캘리포니안호였을 거라는 이야기에 16km 내에 정체불명의
배가 새벽 2시까지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캘리포니안호의 삼등 항해사 그로브스와
갑판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특히, 캘리포니안호의 로드 선장은 죽을 때까지 당시 이 정체불명의
배를 타이타닉호가 아니었으며 타이타닉호와 자신의 배 사이에
또 다른 배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안호의 선장이었던 로드>
또, 청문회에서 질문받은 타이타닉호의 일부 선원들과 승객들이 빙산에 부딪힌 후
배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으며 어떤 항해사는 네 방의 포성을 들었다는 증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었던 당시, U보트의 디자인을 완성한 독일 해군이
북대서양으로 U보트를 정찰하게 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와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 침몰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한편, 타이타닉호 침몰 3년 후인 1915년 독일의 U보트는 어뢰를 발사해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했음이 확실함에도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론은 단순히 당시 혼란 속에서 사실을 확대해서
받아들였던 일부 승객과 선원들의 착각이었거나, 이 일 때문에 업무태만을
이유로 선장의 자리를 잃게 되는 로드 선장의 책임회피성 발언이었을까요?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사장이었던 브루스 이즈메(좌)와 실질적인 오너였던 J. P. 모건(우)>
다음의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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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타이타닉 침몰에 관련된 정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어쨌든 이후 미국 경제공황의 확산을 저지하는 자금력을 보여주는 J. P. 모건, 석유왕이 되는 록펠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되는 로스차일드가는 계속해서 부흥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독일 잠수함 관련 음모론
침몰 후 첫 구명정이 내려가면서 절망에 빠지게 되는 스미스 선장과 선원들에게 불과
10km 떨어진 곳에서 배의 불빛을 발견해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조명신호와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도 없는 선박은 희망의 불빛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며,
구명정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근처를 지나는 배의 탐조등을 봤다고 주장을 하며
당시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던 캘리포니안호였을 거라는 이야기에 16km 내에 정체불명의
배가 새벽 2시까지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캘리포니안호의 삼등 항해사 그로브스와
갑판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특히, 캘리포니안호의 로드 선장은 죽을 때까지 당시 이 정체불명의
배를 타이타닉호가 아니었으며 타이타닉호와 자신의 배 사이에
또 다른 배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안호의 선장이었던 로드>
또, 청문회에서 질문받은 타이타닉호의 일부 선원들과 승객들이 빙산에 부딪힌 후
배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으며 어떤 항해사는 네 방의 포성을 들었다는 증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었던 당시, U보트의 디자인을 완성한 독일 해군이
북대서양으로 U보트를 정찰하게 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와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 침몰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또, 청문회에서 질문받은 타이타닉호의 일부 선원들과 승객들이 빙산에 부딪힌 후
배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으며 어떤 항해사는 네 방의 포성을 들었다는 증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었던 당시, U보트의 디자인을 완성한 독일 해군이
북대서양으로 U보트를 정찰하게 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와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 침몰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었던 당시, U보트의 디자인을 완성한 독일 해군이
북대서양으로 U보트를 정찰하게 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와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 침몰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한편, 타이타닉호 침몰 3년 후인 1915년 독일의 U보트는 어뢰를 발사해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했음이 확실함에도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론은 단순히 당시 혼란 속에서 사실을 확대해서
받아들였던 일부 승객과 선원들의 착각이었거나, 이 일 때문에 업무태만을
이유로 선장의 자리를 잃게 되는 로드 선장의 책임회피성 발언이었을까요?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사장이었던 브루스 이즈메(좌)와 실질적인 오너였던 J. P. 모건(우)>
한편, 타이타닉호 침몰 3년 후인 1915년 독일의 U보트는 어뢰를 발사해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했음이 확실함에도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론은 단순히 당시 혼란 속에서 사실을 확대해서
받아들였던 일부 승객과 선원들의 착각이었거나, 이 일 때문에 업무태만을
이유로 선장의 자리를 잃게 되는 로드 선장의 책임회피성 발언이었을까요?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사장이었던 브루스 이즈메(좌)와 실질적인 오너였던 J. P. 모건(우)>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론은 단순히 당시 혼란 속에서 사실을 확대해서
받아들였던 일부 승객과 선원들의 착각이었거나, 이 일 때문에 업무태만을
이유로 선장의 자리를 잃게 되는 로드 선장의 책임회피성 발언이었을까요?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사장이었던 브루스 이즈메(좌)와 실질적인 오너였던 J. P. 모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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