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연습겸 한국역사를 다시 복습하기로 했다.



1장 한반도의 선사 문화와 국가 형성


1절 한국인의 기원

가. 언제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을까?


한국인의 기원 : 언제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을까 ?
한반도에는 7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당시에 사람들이 만든 도구가 그들이 살았던 동굴 속에서 발굴되었다. 그런데 빙하기와 간빙기가 이어졌던 이 기간 동안에, 한국이 중국과 이어져 있었던 흔적과 일본이 육지로 연결되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채집과 사냥을 하면서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인의 직접 조상인지는 확실치 않다.

단양 금굴 동굴과 인류의 진화
충 북 단양의 금굴 유적지에서는 외날찍개, 주먹도끼와 같은 70만 년 이전에 사용된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이 시기에는 ‘곧선 사람(Homo Erectus)’이 살았는데, 중국에서 180만 년 된 사람의 흔적이 발굴된 사실을 보면, 한반도에도 70만 년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수도 있다. 오늘날 인류의 직접 조상으로 여겨지는 ‘슬기슬기 사람(Homo Sapiens Sapiens)’이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약 3~4만 년 전인데, 최근 북한지역에서 이시기 사람의 뼈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금굴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충북 단양)
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다. 이 시기 인류는 주먹도끼와 같이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 만주와 한반도는 황하 문명과 다른 문화권이었다
만주와 한국에 청동기가 보급된 것은 기원전 15~10세기 무렵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들은 황하 문명을 토대로 일어났던 은·주왕조의 그것과 뚜렷이 구별된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옛 악기인 비파와 닮아서‘비파형 동검’이라 한다. 생김새가 중국의 동검과 뚜렷이 다르며, 아연 성분이 많은 것도 중국의 동검과 다른 점이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 지역은, 북방식 고인돌(한국형)의 분포 지역과 거의 같다. 고대의 중국 역사책들은 황하 문명을 이루었던 (중국) 한족이 살던 동쪽에, 자신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동이족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기원전 25세기 무렵 동쪽으로 이동하였음을 알려 주는 기록도 있다. 이는 한국인 조상의 활동을 적은 것이다.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된 한국의 고인돌
한국과 만주 일대에서는 이스터 섬의 석상이나 영국의 스톤헨지를 연상할 정도의 거대한 바위로 된 유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은 대부분 청동기 시대 군장들의 무덤인데, 인천시 강화도와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지역의 고인돌은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군장의 무덤인 고인돌이 매우 큰 것은 군장의 권력이 매우 컸음을 말해 준다. 이 시기에는 농업이 이전보다 훨씬 발달했다. 그래서 같은 무리들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생겨났고, 세력이 강한 집단과 약한 집단의 차이도 뚜렷해졌다. 청동으로 만든 예리한 무기를 가진 집단은 종종 약한 집단을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노예로 만들기도 하였다.

한반도 중남부에서 발견되는 고인돌과 이북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고인돌 중에는 규모가 작은 것도 많고, 제단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도 있다.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일어나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고조선의 성립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늘에서 환웅이란 분이 구름, 비, 바람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내려와 아들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 분이 후에 고조선을 세웠다.     
단군왕검 탄생과 고조선 건국 이야기에 신화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나, 다른 나라의 건국 이야기도 신화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생활상과 시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청동기 시대가 시작될 무렵에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고조선이 있었으며, 비, 구름, 바람을 다스린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가 농경 사회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고조선은 기원전 7 세기 무렵에는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었으며, 기원전 4 세기 무렵에는 중국의 연 나라와 전쟁을 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고조선이 가장 팽창하였을 때는 기원전 2 세기로, 위만이 단군 조선을 이어받은 이후였다. 위만과 그의 계승자들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부족 세력을 합하여, “영토가 사방 수 천리에 이르렀다.”고 중국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고조선은 잘 짜여진 통치 기구로 넓은 영역을 지배한 강력한 국가였고, 중국을 통일했던 ‘한’제국의 공격을 받고도 1년 이상 완강히 저항할 정도의 강력한 동방의 세력이었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  
비파형 청동검과 북방식 고인돌은 중국 역사 기록에 나오는 동이족의 활동 무대와 거의 동일함.

고조선의 뒤를 이은 나라들(기원전 4세기 이후)


[출처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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