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 그는 과연 존경 받을 인물인가?

    세계 4대 성인으로 예수, 공자, 붓다, 마호메트(혹은 소크라테스) 뽑힌다. 어느 곳에서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어는 곳에서는 철학가 소크라테스를 4대 성인으로 넣고 합니다.

     

    여기에 마하트마 간디를 넣자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만큼 간디는 비평화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에 항상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킨 이 비폭력 저항 방식과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물레'로 상징되는 수행자적, 도덕교과서적 이미지로 좀처럼 '안티'가 없는 인물 중에 한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듯이 무결점처럼 보이는 간디에게도 먼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먼지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는 조금 동 떨어진 먼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 이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이고, 저 마하트마는 후세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시 간디는 위대한 영혼도 부족해서 스스로를 "진정한 마하트마"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스스로를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른 간디의 가장 큰 업적은 인도의 독립인데 이를 비폭력 즉 평화주의적으로 이끌었다는데 이 또한 좀 모호합니다.

     

    인도는 현재도 노예계급인 카스트 제도가 있습니다. 당시 간디는 이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서로 조화롭게 살아라" 노예들의 노동 품삯을 받지 못해 어린 자식들이 굶게 죽게 생겼지만 그에게 "조화롭게 살아라" 라고 말합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도적질이라도 해야겠다. 라고 말하면 "차라리 죽어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간디가 말하는 비폭력주의의 양날의 검입니다. 기존 질서 아래 큰 고통없이 요즘말로 '금수저'들에게는 매우 평화롭게 들리겠지만 '흙수저'들에게는 간디는 온화한 웃음을 띤 방관자일 뿐입니다.

     

    그 예로, 1917년 구자랏의 아흐메다바드 신생 노동조합운동에 간디가 관여하게 됩니다. 1870년 면방직과 제조업이 융성했던 곳으로 영국의 맨체스터에 버금갈 정도였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섬유산업이 절정에 오르면서 아흐메다바드의 경기는 급상승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폭동을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고, 제조업자들은 간디에게 청탁을 합니다. 그래서 간디는 제조업자들에게 노동자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한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라고 제안을 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노동조합 지원의 조건이 파업과 같은 쟁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 인도는 독립을 한 후에도 간디가 죽은 후에도 만성적 빈곤, 빈부격차, 노동탄압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별반 차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비폭력, 평화를 주장했던 간디지만 젊은시절 "조국" 영국을 위해 보아전쟁, 줄루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려고 참전신청을 제출했지만, 늑막염으로 참전은 하지 못했습니다. 즉 평화를 위해 전쟁에는 참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비폭력 주의는???

     

    이뿐만 아니라 2차세계대전시 히틀러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히틀러는 착한 사람이니 곧 중지할 것" 히틀러가 착한사람이라면 선악의 기준은 바뀌어야 되겠네요. 게다가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히틀러가 너무 하긴 한다. 그러니 유태인인들은 싸우지 말고 자살해라" 라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간디가 히틀러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는 영국군에 의해 빼앗겨 히틀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런 간디의 마인드는 자국에도 적용이 됩니다. 그는 "인도의 자유를 위해서 백만명이 희생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라고 말합니다. 국민을 총알받이로 위대한 독립 운동가가 되겠다는 뜻인가요?

     

    이런 간디가 인도의 독립을 주장한 개념도 우리가 알던 것과 조금 다릅니다.

     

    그가 주장했던 인도의 독립은 마을자치입니다. 그람 스와라지라고 하는 이 방법은 쉽게 말해서 일종의 자치권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피지배국은 항상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때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바친걸 국사시간에 배우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배국이 택한 정책은 바로 자치권입니다. 자치권이란 지방공공단체가 그의 구역내에서 가지는 지배권을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도의 독립이 아닌 우리나라로 따지면 지방자치제 장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은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평화주의를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식민지 지배를 수월하게 할수 있는 방법을 간디가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자치권을 간디가 주장했으니깐요.

     

    영국은 간디와 밀당을 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간디를 최고 독립투사인양 부각을 시킵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간디를 중심으로 결속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은 간디만 통제하면 인도 전체를 통제할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간디가 주장하는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닌 제국주의자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준 꼴이 된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간디의 성적 행동입니다.

     

    인권을 중시여겼던 간디지만 자신의 성생활은 인권을 중시여겼다고 보기는 조금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돌아다니는 루머로는 소아성애자니, 게이니, 근친상간도 했다느니 다양한 소문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인디펜던트" 잡지에서 간디의 성생활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출처 : 

    http://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books/features/thrill-of-the-chaste-the-truth-about-gandhis-sex-life-1937411.html)

     

    자신의 정조를 실험하고 싶어서 젊은 처자들과 알몸으로 동침을 하는 실험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신이 여성을 어떻게 범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식입니다.

     

    이 실험에 자신의 조카도 참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결을 강요합니다. 결혼을 했다면 일생에 3~4회만 부부관계를 갖고 그 이상 관계를 갖는 자는 처벌 할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물론 인도는 지금도 여성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기에 이 발언은 어쩌면 당시 인도에서 당연할수도 있지만) 부인을 '소'에 비유했고, 부인이 폐렴에 걸리자 종교적 신념으로 현대의학을 거부한채 페니실린 주사도 놓지 못하게 하여 부인을 사망케 만듭니다.

     

    하지만 자신이 말라리아에 걸리자 서둘러 주사를 맞았고, 맹장염에 걸렸을때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모순된 점을 보일순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간디가 주장했던 사상은 비폭력 평화가 아니라 그저 "문제없는 삶" 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이래도 간디를 존경한다면... 당신은 진정 간디를 존경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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