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좋은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자

민족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에 대해 풀어봅니다.

 

 

19세기말 서양에서의 민족주의는 팽창주의와 식민주의, 제국주의와 연결이 됨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선 反식민주의, 反제국주의라는 특성을 지님

19세기말 유림(儒林)의 위정척사운동과 개화파의 체제개혁운동, 그리고 민중의 동학혁명운동 등이 있었지만 추진세력간의 상호갈등이 격심했고 더구나 외세에 결탁한 문벌척족세력에 의해 각개 격파됨으로써 무참하게 실패로 끝나고 외세, 즉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적 개항과 근대화를 맞이했기 때문임

북한의 김일성도 장기독재의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이용

한국 민족주의의 통일운동에 대한 열망은 역대 집권자들로 하여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 강한 미련과 집착을 보이게 하는데 기여

이런 여망이 결국 작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6.15공동선언으로 표출된 것임

 

 

 

 

민족주의 자체가 식민지 시대에 상대방 식민지에서의 식민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조성된 정신임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신대륙과 아프리카를 먹고 이슬람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당시 오스만 제국의 광대한 식민지이던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지중해에 이슬람 민족주의 이집트 민족주의 사상을 개창하고 식민지 원주민들을 개화및 해방한다는 식의 발상으로 민족주의를 조장함

내륙국이자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대서양 진출이 막힌 독일은 내부적으로 독일민족주의 자강운동을 통해 내부적 민족주의 사상 게르만민족주의를 주창함 

 

그리고 이슬람의 광대한 식민지를 놓고 프랑스와 남아시아까지 진출한 영국과 갈등중이던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고 갈등상황을 첨예하게 대립하며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및 식민지시대에 소외된 동유럽 국가들과 총궐기 서유럽 대 동유럽의 세계대전(유럽대전에 오스만까지 합류 하며 유럽 서남아시아 대전으로 확장)으로 발발한게 1차세계대전임이 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프랑스는 아프리카 대륙과 동지중해 근처 현 시리아 지역까지 영국이 남아프리카및 아덴만과 홍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수에즈의 통행권을 서유럽이 완전히 장악하면서 이슬람 분열이 시작됨

현 시리아 난민의 책임의 원죄를 따지자면 1차세계 대전때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과도한 민족정책과 자원유출 부족별 차등대우등을 통한 분열주의를 조장한 식민정책에 있음

 

식민지 시대의 원죄를 따져보면 솔직히 히틀러의 전쟁범죄는 경범죄에 해당할 정도임

아프리카의 토종 식생물의 멸종과 사막화의 가속은 당시 유럽인의 입맞에 맞는 유럽형 육우의 방목을 위해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아프리카 토종 물소를 학살하고 유럽산 소를 방목하며 초지의 사막화가 가속되었다는 연구보고도 있으며 

이런 대량유입되는 외부종 생물로 인해 학살보다 더한 유럽산 유행설 질병이 항체조차 없던 아프리카 생물에게 퍼지며 외부 질병에 의한 토종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짐

이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으로 유럽이 오스트리아와 뉴질랜드(상대적으로 멀어서 사업성이 떨어져서 후보군으로 밀리고 밀려서)에 유럽산 육우및 방목형 양의 유입에 까다롭게 굴어서 그나마 뉴질랜드와 호주의 원주생물군이 보전되고 있다는 아이러니도 있음

 

식민지 시대 노예무역은 인종학살보다 더 한게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원주민과 남아시아및 호주대륙 원주민은 같은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의 연구대상에 가까웠으며 

오히려 오래도록 접점이 많던 북아프리카의 흑인보다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 피그미족이나 부시맨 같은 부족들은 오랑우탄이나 소형종 고릴라로 보고되어 애완으로도 팔리기도 함 

이는 남미 원주민이라고 다를게 없었고 중국과 일본의 노예무역상이나 해적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잡힌 평범한 아시아 인들도 희귀한 복장을 한채 팔려가기도 햇음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주윤발이 중국해적 두목으로 나오는데 당시 아시아 노예상의 대부분이 해금령에 의해 포기된 중국 남해안및 남아시아 인종을 납치해 필리핀이나 인도 신대륙 노예로 팔아넘긴 

남중국 대해적들이 바로 이 주윤발이 연기한 중국해적들의 원조임 오히려 동북아의 왜적들은 이 중국대해적들의 하청업체에 가까운 이들이였음

 

처칠이 인도에 실시한 식량학살이 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축소된 (미국에 영향력을 빼앗겨버린) 식민지 시장을 지키고자 하는 정책이었으며 프항스 또한 2차대전이후 대 공황을 넘기기 위해 

시리아와 북 아프리카 일대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러시아와 피말리는 정쟁을 벌이는데 이에 미국이 끼어든건 70년대 이후라 오히려 70년대 이전에는 이슬람 민족주의 노선에선 러시아를 친구로 프랑스를 악의 축으로 여김 

그래서 전통적 이슬람 테러리즘 단체들은 프랑스에 대한 강경한 노선을 정책적으로(이슬람 내부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위해) 사용함 

프랑스 파리 테러가 완벽히 프랑스를 피해자로 만들어 주긴 했지만 원죄는 프랑스에 있다고 봐도 무방함

 

조선시대 고종무렵에 기초를 닦고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대외적 외교궈과 내정일체를 압류당한 사대부 식자들이 민족자강을 접한건 유럽발 민족주의 보다는 터키 중국 조선으로 유입된 

오스만 민족주의 게르만 민족주의에 가까움 게다가 중국이 아편전쟁을 필두로 영국과 프랑스에 털리고 있는 것을 익히 풍문으로 들어야 했던 조선의 식자들에겐 식민지전장에서 한발 밀려야 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독의 독일식 게르만 민족주의에 감화될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독일식 순혈주의를 이식받아 신채호 선생의 단군조선 순혈주의가 민족주의의 근간을 이루게 되고 일제사관을 이식한 이들과 민족주의 역사주의에서 단군조선이냐 위만조선이냐가 화두로 오르게 됨 

한국식 즉 조선식 민족주의는 그래서 외부민족에게 무척 배타적일수 밖에 없는 상황임 이런 민족주의 계열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중화주의 민족사관과 특히나 단일 중국을 외치던 홍군보다는(공산주의 계열) 국민당에 우호적이었는데 쑨원의 삼민주의 자체가 후에 홍군에 의해 강화된 중화단일민족주의 노선보다는 유화적이었기 때문이며 이는 국민당이 청나라 황군 즉 귀족군대에 가가웠기 때문임

 

물론 위치적으로 만주독립군은 국민당 내에서 홍군이 주축인 팔로군 하에서 작전을 폇지만 만주국 휘하에서 민족 차별주의로 중국인과 조선인 차별정책으로 인해 팔로군 내에서도 조선민족주의 독립군은 개별편제로 임시정부의 강성 작전에 주로 소모되어야 했으며 그래서 조선독립운동가들과 임정의 김구선생이 중국 국민당에서의 발언권을 얻기위해 무리한 게릴라 타격활동과 개별적 폭탄 암살 작전에 소모된 점이 컸다고 생각됨

어쨋든 대원군의 쇄국정책이나 조선의 방어적 개방정책을 변명해 보자면 청나라 즉 대국조차 문호개방과 동시에 털리는 상황해서 문호개방이 조선의 발전이라는 공식자체가 설득력이 없던 시절임 

솔직히 일제 조차 미국과의 문호개방에서 개발리듯 털리고 나서야 세력이 지방 쇼군들에 약하던 일왕이 명분을 얻고 중앙행정권 강화를 위해 미국에 협력하여 개항한게 큼

 

미국은 독립전쟁과 통일전쟁을 겨우 수습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자원확보 보다는 인력 수급을 위한

(독립전쟁과 통일전쟁으로 노예계급인 흑인의 무분별한 인력소모산업이 제제가 걸려서 인력사업 수급이 당시 미국에겐 큰 문제였음 

그래서 대국인 청나라의 수많은 인구의 노동력이 도자기나 차 따위 보다 더 중요한 상황잉었음) 

중간 기착지이자 태평양의 보급항 형태로서의 항구를 일본열도와 필리핀으로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상황이라 섬따위의 일본에는 큰 관심 자체가 없었음 

게다가 작고 힘도 없어보이는 단구의 왜구무리는 인력으로조차 쓰기 꺼림칙한게 컷다고 보여짐 그래서 식민지로서의 약탈 대상이 아닌 내부 협력자로서 일본의 산업화를 후원한 때문에 

일본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꽤 우호적인 시각이 컷음

그래서 더 2차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무서워 하기보단 분노하고 태평양 작전에 감정적인 대응이 컷다고 보여짐 

일본내 진공작전 또한 미국이 세워준 일본을 지워 버리겟다는 분노가 작용한 작전 계획에 가까웠다고 보여짐

2차 셰계대전 이후 일본이 아닌 조선이 분할통치된 이유는 미국의 두려움이 컷기 때문이라고 보여짐

미국 입장에선 원폭까지 던지고 초토화한 일본은 잘 다듬으면 미국의 대 아시아 진출의 보급항으로서 토대가 잘 닦여진 상황이었음 

 

 

 

 

그런데 로스케와 중국의 무지막지한 인구가 공산화 되고 일본마져 분할통치 하면 상대적으로 태평양이 밀릴 관문을 공산주의 진형에게 내주는 상황이 되버림

그렇다고 일본을 미국이 먹고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반도까지 통치 하기엔 승전국인 중국과 유럽전쟁의 종결자인 로스케에게 명분에서 밀림

미국입장에선 노르만 작전과 영국물자 지원 이외엔 지중해 전장에서 한게 없는 상황이고 태평양을 밀어버리긴 했어도 

러시아의 전사상자와 완전히 밀어버린 북유럽의 작전을 과소할 명분이 없었음 실제로 러시아는 북유럽부터 남아시아 전역까지 진공작전으로 독일을 분쇄한 전공이 압도적인데다 유럽입장에서도 물자나 팔아먹고 소규모 상륙작전이나 진행한 지중해에서의 미국보단 독일 점령이 빨랐던 러시아 손을 들어줄 상황일 수 밖에 없음 

게다가 맑시즘은 자본주의의 횡포가 증명되어 노동계급의 불만이 극에 달한 유럽시장에서 먹히는 사상이라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었음 

 

그나마 처칠과 영국왕실이 자본주의 지분에 영향력이 강하고 드골의 민족주의가 러시아의 공산화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독일 서부를 겨우 지키는 상황에서 일본을 내주면 태평양과 대서양 주도권 모두를 내줄 상황이라 패전국 식민지도 패전국이란 미명하에 자체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조선은 패전국으로서 분할 통치의 대상이 되어버림

로스케입장에서 동유럽및 서남아시아 핵심 자원지역의 공산화에 신경이 모두 몰린 상황에서 중국마져 국공내전의 향방이 홍군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일본열도보단 직접 진주가 가능한 육상의 반도가 더 편리한 상황이라 사상교화가 완료된 젊은 조선군 소좌하나 영웅화 해서 지도부로 삼아 공산화 하는게 편리한 상황이고 

공산화에 취약한 민족주의 계열이 영웅화 되는 정치상황에서 미국이 주둔하는 좁은 지역정도는 게다가 산업시설도 취약한 반도의 남부는 크게 문제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짐

결국 제손으로 독립 못하고 일제에 휘둘리다 끝나버린 탓에 우린 분단되어 냉전시대도 종결된 지금까지 색깔논쟁으로 정신 못차리고 있는 상황임

 

 

한국 민족주의의 한계는 민족주의의 과열현상이 분출되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점

한국 민족주의는 아직도 배타적, 혈통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민족주의의 지나친 과잉현상은 경계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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