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실 신성일 스캔들과 담담한 태도 찌라시


영화배우 태현실 신성일 스캔들, 태현실의 젊은시절 에피소드들이 흥미롭네요.


# 목차

* 태현실 젊은 시절

* 태현실 신성일 스캔들 터지고



탤런트 겸 영화배우 태현실(본명)은 1942년 11월 1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납니다(태현실 고향 이북 성진). 올해 75살이죠(영화배우 태현실 나이).

(태현실 종교) 통일교

(태현실 학력 학벌)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태현실 프로필 및 경력) 1963년 영화 '아름다운 수의'로 데뷔


이 후 영화 설야, 선생님 안녕, 내시, 무릎과 무릎사이, 밀월, 실락원, 첫눈, 서울에서 김책까지 등과 드라마 여로, 북간도, 눈동자, 해돋는 언덕, 여명의 그날, 신 손자병법, 골목안 사람들, 작은 아씨들 등에 출연합니다.태현실진

영화배우 태현실 젊은시절 사진

* 태현실 젊은 시절


태현실과 태진아는 서로 무관한 사람입니다.

'태'씨가 희귀성이어서 착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태진아 본명은 조방원이고 태진아는 예명일 뿐이죠.


태진아: "태진아라는 이름이 태현실의 '태', 남진의 '진', 나훈아의 '아'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들 세사람이 당대 최고의 인기였다."


사실 태현실이 인기가 최고였다는 점은 맞지만, 그 위치는 좀 묘합니다.

과거 엄앵란이 최고 여배우로 활동할 때는 그 그늘에 좀 묻힌 느낌이었고, 엄앵란이 신성일과 결혼을 한 다음에는 태현실 역시 뒤이어 결혼 발표를 했고, 또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의 트로이카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태현실이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은 결혼과 출산 후에 복귀했던 드라마 여로였습니다. 당시 태현실은 여로로 실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죠.


태현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무척 엄해서 영화배우가 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안 오빠뻘 되는 영화 촬영기사 태길성 씨의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태현실: "첫 데뷔작은 이형표 감독님의 <아름다운 수의>이었는데, 어머니의 허락 조건중의 하나가 바로 '배우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결혼하면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었다."

태현실 젊은 시절 사진, 태현실 리즈 시절

* 태현실 신성일 스캔들 터지고


태현실: "또한 내가 배우 활동을 할 때 어머니가 항상 보디가드처럼 따라 다니셨다. 어머니가 워낙 집요하게 내 행동을 감시하셨기에, 연예계에서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이 지냈다."


태 현실: "딱한번 신성일 엄앵란 선배 부부와 삼각 관계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두분의 불협화음이 있었는데, 내가 그 원인 제공자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즉, 신성일이 태현실과 바람을 피워서 엄앵란과 싸웠다는 추측성 기사). 그 때문에 어머니가 멀쩡한 딸 혼사길이 막혔다고 펄펄 뛰시다가 드러눕기까지 하셨다."


신성일: "엄앵란이 결혼 이후에 나는 태현실과 작품을 같이 하게 되었다. 65년에 5편, 66년에 4편의 영화를 같이 찍다보니까, 우리가 사귄다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다. 그 때문에 태현실은 엄앵란 팬들에게 큰 미움을 샀다."


신성일: "당시에 태현실은 남편(김철환)과 연애중이었다. 그래서 촬영장에도 자주 찾아왔는데, 나와의 스캔들 기사를 보고는, 우리 3명 모두 멋쩍게 웃었다."


태현실 어머니가 드러누울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태현실은 담담하게 받아 넘깁니다.


태현실: "(신성일과의 스캔들이) 단 한번의 구설수였다. 사실 배우는 크게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면 적당히 시끄러운 일로 화제의 초점이 되는 것도 크게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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